[이코노미세계] 거창한 개발사업이나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만이 도시의 삶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매일 걷는 산책로의 낡은 바닥, 몸이 불편한 환자와 고령자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아이들이 뛰노는 주민 휴식공간도 시민에게는 도시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경기 안산시가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이런 ‘생활 속 작은 불편’에 주목하고 있다. 행정기관 회의실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과 공무원이 주민들과 직접 현장을 걸으며 필요한 사업을 확인한 뒤 정책과 예산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15일 일동 주민들과 안산식물원과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인근 버스정류장을 잇달아 찾았다. ‘시민의 꿈을 예산에 담다’를 주제로 진행된 현장에는 이 시장을 비롯해 관계 공무원과 지역 주민 등 7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점검의 핵심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겪는 불편이었다. 이 시장은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동 주민 여러분과 함께 ‘현장동행’에 나섰다”며 “안산식물원 일원을 걸으며 노후된 바닥 포장과 주민 휴식공간을 살피고,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버스정류장에서는 환자와 어르신을 비롯한 주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불편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아 주민 목소리를 듣고, 이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첫 현장은 안산식물원 일대였다. 주민들이 제기한 문제는 거창하지 않았다. 식물원 주변의 노후한 바닥 포장을 정비해 달라는 요구와 주민들이 쉬고 즐길 수 있도록 광장에 바닥분수를 설치해 달라는 의견이었다.
안산식물원은 주민들이 산책과 휴식을 위해 찾는 생활권 내 공간인 만큼 시설 노후화는 이용 만족도와 직결된다. 특히 노후된 탄성포장은 도시 미관뿐 아니라 보행환경과도 관련돼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설이다.
안산시는 주민 의견에 따라 식물원 주변의 노후 탄성포장을 철거한 뒤 다시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광장에는 바닥분수를 새로 설치해 단순히 식물을 관람하는 시설에서 시민들이 보다 오래 머물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 시장도 SNS를 통해 “안산식물원 바닥 정비와 바닥분수 설치는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시설에 대한 주민 요구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공원을 만들고 시설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만들어진 시설을 얼마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관리하고, 변화한 시민들의 이용 방식에 맞춰 기능을 개선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안산식물원 정비 역시 이런 생활밀착형 행정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대형 개발사업보다 매일 이용하는 공간의 바닥이 정비되고 가족과 함께 쉴 공간이 늘어나는 것이 훨씬 직접적인 정책 효과로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는 단순한 시설 보수에 그치지 않고 식물원을 주민 생활권의 휴식·여가 공간으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현장은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인근 버스정류장이었다. 병원 앞 버스정류장은 일반적인 정류장과 이용자 특성에서 차이가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 고령자 등이 이용하기 때문에 대기 환경과 편의시설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현장에서 주민들은 계절에 따른 이용 불편을 줄일 수 있는 편의시설 설치를 요청했다. 안산시는 주민 의견을 토대로 버스정류장에 온열의자와 송풍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시설 설치를 위해서는 현장 여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 보도 폭이 충분한지, 전기공사가 가능한지 등 현실적인 조건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는 이런 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구체적인 설치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 시장은 “버스정류장 편의시설 역시 현장 여건을 꼼꼼히 살펴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챙기겠다”고 했다. 이 대목은 지방행정에서 ‘현장 확인’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주민이 시설 설치를 요구한다고 해서 행정기관이 곧바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뿐 아니라 도로 구조와 보행공간, 전력 공급, 시설물 관리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서류나 도면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버스정류장처럼 보행자와 차량의 동선이 맞물려 있는 공간은 실제 현장을 확인해야 설치 가능 여부와 적정 위치를 판단할 수 있다. 주민과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서 문제를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병원 주변 버스정류장 개선은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교통복지라는 관점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가운데 고령자와 환자 등은 일반 이용객보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한여름 폭염이나 겨울철 한파 속에서 장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이용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병원과 복지시설 주변 정류장의 경우 일반 정류장과 다른 이용 특성을 고려한 시설 개선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안산병원 앞 정류장의 온열의자와 송풍기 설치 검토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설을 얼마나 많이 설치하느냐가 아니라 실제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용객 규모와 연령대, 주변 시설의 특성, 버스 운행 간격, 보행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일동 현장 점검은 주민의 구체적인 경험을 행정이 직접 듣고 시설 개선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 현장 행정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부분은 시점이다. 안산시는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시민의 꿈을 예산에 담다’라는 이름으로 주민 의견을 듣고 있다.
주민과 만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된 사업의 필요성을 검토해 예산과 정책에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지방자치단체의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지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도로와 교통, 복지, 문화, 공원, 교육환경 등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하지만 모든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기는 어렵다.
결국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행정기관 내부 판단뿐 아니라 실제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중요하다.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불편을 제기하는 현장을 시장과 담당 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면 사업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주민이 요구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현장 여건이나 예산 문제로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이유와 대안을 주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현장 소통의 성패가 단순한 방문 횟수가 아니라 방문 이후의 정책 변화에 달려 있는 이유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현장 방문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전통시장과 공사현장, 민원 발생지역 등을 찾아 주민을 만나고 관계 공무원에게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문제는 현장 방문 이후다. 주민에게 약속한 내용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는지, 검토 단계에서 중단됐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언제 반영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현장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번 일동 현장동행도 마찬가지다. 안산식물원 바닥 정비와 바닥분수 설치, 안산병원 버스정류장의 온열의자·송풍기 설치 등이 실제 어떻게 추진되는지가 향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서 나온 의견을 사업별로 관리하고 추진 상황을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접수→검토→예산 반영→사업 시행→완료’ 과정을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다면 현장 방문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생활밀착형 사업일수록 주민 체감도가 높지만 동시에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는 것 못지않게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할 예산과 관리 주체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방정부들은 기업 유치와 산업단지 조성, 철도·도로망 확충 등 대형 프로젝트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도시의 변화를 체감하는 지점은 반드시 대형 사업만은 아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길이 안전해지고, 낡은 공원이 정비되고, 여름철 뜨거운 정류장에서 조금 더 편하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변화 역시 시민의 삶과 직결된다.
이른바 ‘생활SOC’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되고 생활권 중심의 행정 수요가 증가할수록 주민들의 일상적인 이동과 휴식, 보행환경을 세밀하게 살피는 지방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일동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 역시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안산식물원은 주민 휴식공간의 문제이고, 병원 앞 버스정류장은 교통약자를 포함한 시민 이동권과 관련된 문제다.
하나는 공원·여가 행정이고 다른 하나는 교통행정이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모두 ‘생활의 질’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연결된다. 부서별 행정에서 벗어나 시민 생활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민근 시장은 이번 현장동행을 마친 뒤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민 여러분의 목소리가 눈에 보이는 변화로 이어질 때까지 끝까지 살피고 챙기겠다”고 밝혔다.
안산시 공식 자료에서도 이 시장은 현장에서 확인한 주민 제안들이 주민 휴식공간 개선과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높이는 생활밀착형 요청이라며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번 현장동행의 핵심은 ‘현장에서 들은 목소리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정책으로 바꾸느냐’에 있다. 주민과 시장이 함께 길을 걷는 것으로 행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낡은 바닥이 실제 새로 정비되고, 주민이 원하는 휴식시설이 적정한 방식으로 설치되며, 병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환자와 어르신의 불편이 줄어들 때 현장 행정은 비로소 결과를 갖게 된다.
예산 편성 과정도 중요하다. 현장에서 필요성이 확인된 사업이라도 예산 확보와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업의 필요성과 비용, 이용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주민에게 추진 과정과 결과를 설명해야 한다.
현장 행정은 주민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행정이 아니라 주민의 요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고, 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을 구분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안산시가 추진하는 ‘시민의 꿈을 예산에 담다’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이 말하고 행정이 듣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시민이 제안하고, 행정이 현장을 확인하고, 이를 예산과 정책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정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안산식물원의 낡은 바닥과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요구는 작은 생활민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이 시장의 말이 행정의 구호를 넘어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제 현장에서 확인한 과제를 예산과 실행으로 연결하는 후속 조치가 남아 있다.
주민이 제기한 작은 불편 하나를 해결하는 과정이 쌓일 때 시민이 체감하는 도시의 변화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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