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기후위기·고령화·주거난 등 복합 위기를 맞는 한국 지방도시들이 해법을 찾아 유럽 현장으로 나섰다.
안양시를 비롯한 목민관클럽 소속 10개 지자체는 23일부터 8박 9일 일정으로 체코 프라하·브르노,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해 ‘살기 좋은 도시,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가다’라는 주제의 정책 연수를 시작했다. 이번 연수는 단순한 기능 개선을 넘어 도시 철학과 구조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기획됐다.
한국의 지방도시들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청년 인구 유출, 심각한 주거 불평등, 공동체 붕괴라는 4중고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행정적 미세조정만으로는 도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해외 선진사례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안양시는 1기 신도시 재정비, 구도심 활성화, 기후위기 대응형 도시계획 등 굵직한 현안을 안고 있다. 이번 해외 연수는 이를 해결할 ‘도시 대전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실험대라 할 수 있다.
프라하는 역사 보존과 도시재생을 병행해 관광과 지역경제를 동시에 살려낸 대표 사례로 꼽힌다. 낙후된 구도심 건물을 리모델링해 청년·예술가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공공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공동체 활력을 불어넣었다.
브르노는 체코 제2의 도시이자 첨단산업·스타트업 허브로,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산학연 클러스터를 적극 도입했다. 안양시는 브르노 시청의 공식 초청을 받아 시장 접견과 자매도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스트리아 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이유가 명확하다. 포용적 주거정책으로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며, 스마트시티 전략으로 친환경 교통·재생에너지·디지털 행정을 실현하고 있다.
빈의 공공임대주택 모델은 한국에서 늘 불거지는 ‘주거 양극화’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문가들은 “서울 중심의 공급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지방도시 맞춤형 공공임대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프라하식 도시재생은 안양 구도심, 수원 팔달구, 성남 중원구 등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화된 지역에 적용 가능하다. 특히 청년 창업 공간, 예술인 창작소, 주민 공유 오피스 등으로 리모델링해 ‘도심 속 공동체 회복’을 꾀할 수 있다.
브르노의 클러스터 전략은 경기 남부권 IT·바이오 산업벨트 구축에 접목될 수 있다. 안양시는 평촌 스마트밸리와 인근 판교·광교와 연계해 ‘수도권 남부 혁신축’을 구상하고 있다.
김진호 경기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유럽 선진도시들은 공공이 적극 개입해 주거·교통·환경을 포용적으로 설계했다”며 “한국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도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영 한국도시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르노와 빈은 단순히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삶의 질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며 “안양의 이번 연수는 ‘사람 중심 도시철학’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안양시의 유럽 정책 연수는 단순한 벤치마킹이 아니라, ‘도시 철학의 전환’을 모색하는 실험이다. 한국 지방도시가 직면한 위기는 주거·환경·공동체·산업이 얽힌 복합 위기다. 해법 역시 단편적 사업이 아니라 총체적 도시 재구성이어야 한다.
브르노에서 빈까지 이어지는 이번 여정은 안양뿐 아니라 한국 지방정부들이 ‘사람 중심 지속가능 도시’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지방도시가 글로벌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비전과 시민 체감형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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