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작 30점과 평화의 소녀상 그림 10점 통해 시민 공감 확산
[이코노미세계] 경기도청 1층 로비가 평화와 인권,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다. 벽면에 걸린 시와 그림 앞에서 도청을 찾은 방문객과 직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작품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같은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경기도는 오는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앞두고 3일부터 6일까지 도청 1층 로비에서 ‘평화·인권·기억’을 주제로 작품 전시를 열고 있다. 피해의 역사를 과거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도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번 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을 문화예술과 접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일회성 기념행사를 넘어 시와 그림, 음악을 매개로 시민들이 역사에 접근하도록 했다.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와 세대와 지역을 넘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시 작품은 모두 40점이다. ‘202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평화·인권·기억의 메시지 공모전’ 출품작 가운데 선정된 시 20점과 그림 10점, 김세진 작가가 전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작품 10점으로 구성됐다.
경기도가 앞서 진행한 메시지 공모전에는 시 123점과 그림 16점, 음악 11점 등 총 150점이 접수됐다. 시 부문 출품작이 전체의 80%를 넘을 만큼 높은 참여를 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각자의 언어와 감성으로 기억하려는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도는 분야별 응모 현황과 작품성 등을 고려해 시와 그림 30점을 도청 전시작으로 선정했다. 여기에는 공모전 수상작도 포함됐다. 작품에는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상실, 그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기록은 역사를 보존하지만 예술은 그 기록에 감정을 더한다. 연도와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역사적 사실이 시와 그림을 만나면서 한 사람의 삶과 목소리로 다가온다. 관람객은 작품을 읽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마주하고, 평화와 인권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전시 장소가 별도의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경기도청 로비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민원과 업무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일상적인 공간에 작품을 배치해 도민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의 기억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일부러 전시장을 찾지 않아도 출근길이나 민원 업무 중 잠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같은 전시 방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특정 세대나 관련 단체만의 기억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기억의 공간을 생활 가까이로 확장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채화로 기록한 김세진 작가의 작품 10점도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104일 동안 전국을 돌며 74곳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그림에 담았다.
평화의 소녀상은 지역마다 모습과 배경이 조금씩 다르다. 설치된 장소도 광장과 공원, 거리 등으로 다양하고 소녀상 주변의 풍경과 시민들이 기억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차이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작품 속 소녀상은 단순한 조형물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에 가깝다. 한 장소에 고정된 조형물을 화폭에 옮기면서 기억의 공간을 다른 지역과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104일간 74곳을 직접 방문했다는 사실은 기억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누군가 현장을 찾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시민과 나누는 과정을 거쳐야 역사는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작가의 수채화에는 전국 곳곳의 소녀상뿐 아니라 기억을 지켜 온 지역사회의 시간도 함께 담겨 있다.
공모전 참여자들의 작품과 김 작가의 그림을 한 공간에 배치한 것도 전시의 특징이다. 공모전 작품이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받아들인 역사의 의미를 보여준다면, 소녀상 그림은 전국 각 지역에 축적된 기억의 현장을 보여준다. 개인의 감상과 지역의 기록이 전시장에서 만나 하나의 평화·인권 메시지를 완성하는 셈이다.
경기도청 전시는 6일까지 진행된다. 이후 작품은 광주시 나눔의집으로 옮겨진다. 오는 8일 열리는 ‘202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행사’ 현장에서도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공간이 도청에서 나눔의집으로 확장되면서 작품이 지닌 의미도 한층 깊어진다. 도청 로비가 도민의 일상 속에서 기억을 환기하는 공간이라면, 나눔의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과 역사를 보다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장소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디에서 관람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울림이 달라질 수 있다.
8일 기념행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유공자에 대한 경기도지사 표창과 메시지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된다.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 역사 기억을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을 격려하고 시민 참여로 만들어진 작품의 의미를 공유하는 자리다.
시상에 그치지 않고 수상작을 무대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시 부문 우수작 2편을 낭독하고 음악 부문 대상과 최우수작 2편을 공연한다. 전시장 벽면에 머물던 메시지가 목소리와 선율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시 낭독은 글로 표현된 피해자의 아픔과 평화의 염원을 사람의 목소리로 되살린다. 음악 공연은 말과 그림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감정을 공유하는 통로가 된다. 시각예술과 문학, 음악을 아우르는 이번 행사는 역사적 기억을 다양한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사업의 핵심은 과거의 고통을 추모하는 데만 있지 않다. 전쟁 상황에서 자행된 여성 인권 침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인간의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현재의 문제로 이어가는 데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의 역사를 어떻게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 당시의 경험을 직접 들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록과 교육, 문화예술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과 전시는 시민이 기억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가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느낀 점을 시와 그림, 음악으로 표현했다. 작품을 접하는 관람객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게 문화예술은 역사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춰 줄 수 있다.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피해자의 삶을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교육이 된다.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하는 일은 개인의 배움을 사회적 기억으로 넓히는 과정이다.
다만 기념사업이 지속적인 힘을 얻으려면 특정 시기에만 행사를 여는 데서 벗어나 전시와 교육, 기록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필요가 있다. 공모전에서 나온 작품을 학교와 공공기관, 지역 문화시설 등에서 순회 전시하거나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민이 만든 메시지가 더 넓은 공간에서 공유될수록 기억의 기반도 단단해질 수 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되풀이돼서는 안 될 폭력의 흔적을 돌아보고 오늘의 인권을 지키는 출발점이다. 경기도청 로비에 걸린 40점의 작품은 거창한 구호 대신 시 한 편과 그림 한 장으로 그 의미를 전한다.
도청에서 나눔의집으로, 전시장에서 기념행사 무대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기억하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춰 선 한 사람의 발걸음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되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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