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은 숫자가 아닌 도민과의 약속" 책임 행정 요구 확산
경기도의회, 재정 운영 체계 전면 개선 촉구
[이코노미세계] 예산은 숫자가 아니다. 예산은 행정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도민의 세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공적 약속이다. 그렇기에 예산은 편성에서 집행까지 모든 과정이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열린 경기도 결산심사에서는 이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와 경기도청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김선영 부위원장은 제391회 정례회 제3차 경기도청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의에서 축산동물복지국과 복지국의 예산 집행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번 심사는 단순한 사업 지연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행정 절차가 누락되고, 반복적인 예비비 사용이 관행처럼 이어지는 등 경기도 재정 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선영 부위원장이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축산동물복지국의 '축산농가 악취저감 컨설팅 지원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축산농가의 악취를 줄이고 주민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사업이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정 절차가 누락됐다.
정책연구용역이 필요한 사업은 본예산을 편성하기 이전에 반드시 '정책연구용역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이 먼저 편성됐다.
뒤늦게 심의를 진행하면서 전체 사업 일정이 연쇄적으로 밀렸고, 결국 당해연도 안에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업비의 약 30%가 다음 연도로 명시이월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명시이월은 불가피한 경우 허용되는 제도지만, 행정기관의 절차 누락으로 인해 발생했다면 문제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다. 이는 사업 추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시스템 자체의 관리 부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사전 용역 심의를 받지 않고 본예산을 편성한 것은 명백한 행정 절차 위반"이라며 "도민의 혈세를 다루는 집행부가 행정의 기본인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업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 예기치 못한 변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 절차 자체를 생략한 상태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행정 절차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증하고 예산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의회의 예산 심의권 역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김 부위원장은 "문제의 본질은 용역 결과가 늦어진 것이 아니라 의회의 예산 심의와 승인 절차를 사실상 무력화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방재정법과 예산 편성 원칙이 요구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산은 단순히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검증받아야 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결산심사에서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경로당 냉방비 지원사업이었다. 복지국은 냉방비 예산 부족 문제를 예비비를 활용해 해결했다. 표면적으로는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결산검사 과정에서도 수차례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예비비는 원래 예상할 수 없는 재난이나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예산이다.
반면 폭염은 이제 매년 반복되는 기후환경 변화다. 냉방비 부족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한 행정 수요다. 그럼에도 이를 매년 예비비로 충당한다면 이는 예산 편성의 실패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김 부위원장은 "예비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소극 행정의 전형"이라며 "중앙정부와 협의를 통해 국비를 확보하거나 본예산 단계에서 충분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지방정부들은 기후위기와 복지 확대, 고령화 등으로 예산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행정 수요보다 예산 운용 방식이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족하면 예비비를 사용하고, 늦어지면 명시이월을 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반복될 경우 예산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행정 신뢰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의회는 예산 심의기관인 동시에 집행을 감시하는 기관이다. 결산심사는 단순히 지난 사업을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다음 연도의 예산 편성과 행정 운영을 개선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번 심사에서 김 부위원장이 절차와 제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행정 전문가들은 지방재정의 핵심 경쟁력을 투명성에서 찾는다. 절차를 철저히 지키는 행정은 예산 낭비를 줄이고 사업의 효율성을 높인다. 반대로 절차가 무너지면 사업의 신뢰성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례는 특정 사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재정 운영 전반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사전 절차 관리와 예비비 운용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선영 부위원장은 이번 심사의 마지막 발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를 누락하거나 사업예산을 예비비에 의존하게 되면 경기도 재정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결산심사에서 확인된 문제를 반면교사 삼아 도정 전반의 사전 행정 절차 이행 여부를 전수 점검하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산은 지난 예산을 정리하는 절차이지만 동시에 미래 행정을 설계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예산은 결국 도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다. 절차를 지키는 행정은 곧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이번 경기도의회 결산심사가 단순한 지적에 그치지 않고 지방재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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