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우리 아이들은 미래의 시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오산을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입니다.”
제10대 오산시 아동의회가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발대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화려한 행사나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는 도시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당당한 목소리였다. 학교와 놀이터, 통학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네까지 아이들의 관심은 일상의 구석구석을 향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어떻게 바꿔야 더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정해 놓은 답을 반복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문제를 자신들의 언어로 풀어냈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를 것’이라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스스로 깨뜨린 셈이다.
조용호 오산시장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10대 오산시 아동의회 발대식에 참석한 소회를 밝히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조 시장은 “아이들은 학교와 놀이터, 통학길,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네까지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어떻게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며 “아동의회는 아이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의견을 내고, 그 생각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아동의회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아이들을 행정과 정책의 수혜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동안 아동 정책은 대부분 어른들이 필요성을 판단하고 사업을 설계한 뒤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 정책의 대상은 아동이었지만 정작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동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아동의회는 이러한 일방적인 정책 결정 구조를 바꾸는 참여의 장이다. 아이들이 생활 속 불편과 요구를 직접 찾아내고, 토론을 거쳐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이 정책의 대상에서 제안자로, 행정의 수혜자에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의 관점은 어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통학로를 보더라도 어른은 차량 흐름이나 도로 폭을 먼저 살피지만, 아이는 보행 신호가 충분히 긴지, 운전자의 시야에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는지, 비 오는 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다.
놀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에게는 놀이기구의 수와 시설 관리 상태가 중요한 기준일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머물 공간이 있는지, 연령이 다른 아이들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지, 여름철 햇볕이나 겨울철 추위를 피할 장소가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행정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생활 속 작은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공간을 매일 이용하는 아이들인 것이다.
조 시장도 이 같은 아동의 시선에 주목했다. 그는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시선의 작은 의견 하나가 오산의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제안을 단순한 체험 활동의 결과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를 바꾸는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아동의회에서 다루는 의제는 아이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집과 학교를 오가는 통학로, 방과 후 친구들과 이용하는 놀이터와 공원,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마을이 모두 정책 발굴의 현장이다.
이러한 생활밀착형 의제는 규모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정책 효과는 크다. 위험한 통학로 한 곳을 개선하거나, 이용하기 불편했던 놀이터에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안전성과 생활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이 안전한 도시는 다른 시민에게도 안전한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행 신호와 횡단보도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하면 고령자와 장애인, 유모차를 이용하는 부모의 이동도 한층 편리해진다. 공원과 놀이터의 그늘, 휴식 공간, 위생시설을 확충하면 어린이뿐 아니라 가족 단위 이용객과 지역 주민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다.
아동의 관점에서 시작한 정책이 도시 구성원 모두의 편의를 높이는 보편적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특정 세대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도시의 안전과 품질을 높이는 과정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아동의회 활동은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공적인 의제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조정하며, 공동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만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합의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다. 교과서에서 접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실제 토론과 제안 활동을 통해 경험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견이 행정에 전달되고 정책으로 검토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도 커질 수 있다. ‘말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대신 ‘내 제안이 우리 동네를 바꿀 수 있다’는 시민적 효능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의회가 실질적인 참여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발대식 이후의 과정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더라도 행정이 이를 형식적으로 듣는 데 그친다면 참여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제안을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려면 제안 내용을 담당 부서가 검토하고, 추진 가능 여부와 검토 결과를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환류 체계가 필요하다. 당장 시행하기 어려운 제안이라도 예산과 법령, 행정 절차상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대안을 함께 찾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제안의 채택 여부만으로 아동의회 성과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 정책을 발견하고 조사하며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시민교육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의 참여가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지 않도록 행정이 제안의 진행 상황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낸 의견 가운데 즉시 개선할 수 있는 사안과 중장기 검토가 필요한 사안을 구분하고,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알려주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우수한 제안은 관련 부서와 시의회가 함께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현장 점검과 추가 의견 수렴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제안한 아이가 직접 현장을 설명하고 공무원과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면 정책의 완성도와 참여의 실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는 행정이 아동의 눈높이를 배우는 과정이자, 아동이 행정의 현실과 책임을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동의회 구성원들의 대표성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말하기에 익숙하거나 활동 경험이 많은 아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환경과 관심사를 가진 아동의 목소리가 고르게 반영돼야 한다. 장애 아동이나 다문화가정 아동, 참여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아이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때 아동의회의 폭과 깊이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아동친화 정책의 핵심은 시설을 늘리는 데만 있지 않다. 도시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아동의 의견을 얼마나 존중하고 반영하느냐가 정책의 질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아동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에서는 어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한다. 반면 아동을 현재의 시민으로 인정하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경험과 의견을 먼저 묻게 된다. ‘아이를 위한 도시’에서 ‘아이와 함께 만드는 도시’로 행정의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조 시장은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도시’라고 느낄 수 있도록 오산시는 앞으로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 말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듣는 행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응답하는 행정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제시한 의견이 어느 부서에서 어떻게 검토되는지, 실제 정책에 무엇이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 때 아동의회는 상징적인 행사를 넘어 시민 참여의 실질적인 통로로 성장할 수 있다.
제10대 오산시 아동의회의 출범은 새로운 임기의 시작인 동시에 오산시 행정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 행정은 그 목소리에 얼마나 성실하게 답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도시의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놀이터에서 느낀 작은 불편, 친구들과 나눈 동네에 대한 생각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도시가 달라진다.
아이들은 먼 훗날 시민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학교에 다니고, 통학로를 걷고, 공원과 놀이터를 이용하며 오산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시민이다. 제10대 아동의회가 내놓을 작지만 구체적인 제안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당당한 첫 목소리가 발대식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행정의 검토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때, 오산은 비로소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도시’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조금석 기자 press1@economy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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