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8월 12일, 경기도교육청 안전교육관의 선박승선 체험장. 평소 보기 어려운 가상 여객선 내부에 학생들이 올라탔다. 처음엔 설렘 가득한 얼굴로 갑판을 둘러보던 아이들은 갑작스레 배가 기울자 눈빛이 달라졌다. 기울기가 27도에 이르자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체험한 것이다.
“배가 기울기 전에 즉시 비상대피 출구 앞으로 달려가 구명조끼를 착용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이날 체험을 참관하며 “안전은 경기교육의 최우선 가치이자 디딤돌”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들이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느끼도록 하는 ‘실감형 안전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안전교육관에서는 선박 전복, 자동차 전복, 지하철 화재, 승강기 고립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한다.
“책으로만 배우는 안전 매뉴얼은 위기 순간에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다. 직접 경험을 통해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교육청 안전교육 담당자의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실제 비상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선박이 기울기 시작하면 승객이 방향 감각을 잃고, 작은 경사에서도 이동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한다.
“사고 초기의 몇 분이 생사를 가른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결정적이다.” 해양안전연구원의 김성훈 박사는 “가상체험은 학생들이 본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들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령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초등학생은 기본 대피 요령과 기초 응급처치를, 중·고등학생은 재난 상황별 대응 매뉴얼과 심폐소생술(CPR) 등을 실습한다.
실습 후에는 모의 상황에서 학생 스스로 대응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자율 대처 훈련’도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강사는 학생들의 판단력과 행동 속도를 평가해 피드백을 제공한다.
수원 모 중학교 2학년 김모 군은 이번 교육 후 “책에서 읽었을 때는 그냥 알던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완전히 다르더라”고 말했다. 특히 “기울어진 배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배를 탈 때 안전 안내 방송을 절대 대충 듣지 않겠다”고 했다.
임태희 교육감도 “자동차 전복, 지하철 화재, 승강기 고립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을 직접 체험해본 학생들은 실제 재난이 닥쳤을 때 신속하고 침착하게 대처할 확률이 높다”며 “경기교육의 안전교육이 전국적인 표준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실감형 안전교육이 효과적이지만, 일회성 체험에 그치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위기관리학회의 이은정 교수는 “체험을 학기 중 정규 교과와 연계해 반복적으로 실시해야 학생들의 위기 대응력이 체화된다”며 “가정과 연계한 안전훈련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말까지 전 초·중·고 학생 약 50만 명을 대상으로 안전체험 교육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는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재난 시뮬레이션 교육’을 도입해 보다 다양한 상황을 재현할 방침이다.
임 교육감은 “위기에서 살아남는 힘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행동”이라며 “경기교육이 그 디딤돌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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