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비행기 표도, 여권도 필요 없다. 한 끼 식사만으로도 스페인과 튀니지, 우즈베키스탄, 네팔을 만날 수 있다.”
해외여행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고환율과 항공권 가격 부담은 여전히 여행객들의 고민거리다. 그러나 최근 경기도 곳곳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에 정착한 세계 각국 출신 주민들과 외국인 셰프들이 만들어낸 ‘세계 미식 여행’이 그것이다.
안산 다문화음식거리에서 만나는 우즈베키스탄 전통 음식부터 수원 대학가의 튀니지 가정식, 과천의 정통 스페인 레스토랑, 용인의 네팔·인도 요리 전문점까지. 경기도는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글로벌 미식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외국 음식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현지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 본국 출신 셰프의 노하우가 결합된 음식 문화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음식이 관광 콘텐츠가 되는 시대, 경기도의 세계 미식 여행지를 따라가 봤다.
과천 선바위역 인근에 자리한 스페인 요리 전문점 ‘엘 올리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스페인의 정취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올리브 나무’를 뜻하는 스페인어 이름처럼 이곳은 외관부터 내부 공간까지 스페인 현지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특히 3층 규모의 건물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작은 문화 공간에 가깝다.
1층 와인 셀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붉은 색감과 유럽풍 인테리어가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이 펼쳐진다. 초여름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에는 테라스 좌석이 특히 인기를 끈다.
대표 메뉴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인 ‘먹물 빠에야’다. 넓은 팬에 생쌀과 해산물을 넣고 오징어 먹물로 풍미를 더한 정통 방식으로 조리된다. 또한 문어와 감자를 올리브오일, 피멘톤으로 버무린 ‘뽈뽀 콘 파타타’ 역시 현지의 맛을 충실히 재현한 메뉴로 평가받는다.
이곳의 특징은 빠른 식사가 아닌 ‘여유로운 식사 문화’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빠에야가 완성되기까지 약 30분이 걸리지만, 그 시간 동안 타파스를 곁들이며 대화를 나누는 스페인식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인근에 K&L 뮤지엄, 렛츠런파크서울, 서울대공원 등이 위치해 있어 하루 코스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음식과 문화,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형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수원 성균관대학교 인근에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튀니지 전통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다.
지하 공간에 자리한 ‘벨라튀니지’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북아프리카로 순간 이동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매장에는 현지 음악이 흐르고 이국적인 장식품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대표 메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쿠스쿠스’다. 듀럼밀을 잘게 빻아 만든 알갱이를 이용하는 북아프리카 전통 음식으로, 지중해와 아랍 문화가 결합된 마그레브 지역의 대표적인 식문화다.
양고기를 장시간 끓여 만드는 ‘타진’도 인기 메뉴다. 향신료를 활용해 양고기 특유의 향을 줄이고 부드러운 식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현지 출신 셰프가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튀니지 출신 셰프가 주방을 책임지고 있으며, 대학가라는 입지를 고려해 대부분 메뉴를 1만 원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은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로 식당 안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와 아랍어, 프랑스어가 함께 들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일월수목원과 경기상상캠퍼스, 해우재 등이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 화려한 고급 프랑스 요리가 아닌 ‘집밥 같은 프랑스’를 경험하고 싶다면 안양 동편마을 카페거리에 위치한 ‘르디쉬’를 추천할 만하다.
이곳은 프랑스 전통 가정식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이다. 내부에는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과 베르사유 궁전 사진이 걸려 있고 아늑한 조명이 공간을 채운다.
대표 메뉴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채소 스튜인 ‘라따뚜이’다. 토마토와 가지, 파프리카 등 다양한 채소를 천천히 끓여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다. 엔다이브 잠봉 그라탕 역시 프랑스 가정식의 섬세한 매력을 보여주는 메뉴다.
르디쉬는 정통성만을 고집하기보다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고려한 조리법을 적용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이는 세계 음식의 현지화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융합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편마을 카페거리와 안양예술공원 등 주변 관광 자원과 연계하면 하루 동안 프랑스 감성을 경험하는 여행 코스가 완성된다.
평택 팽성읍 안정리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미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와 인접한 이곳에는 미국식 음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크레이지윙스앤버거’는 그 대표 사례다. 매장 안에는 미국식 네온사인과 팝 음악, 다양한 포스터가 가득하다. 메뉴 역시 본토 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했다.
수제 패티와 녹아내리는 치즈,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버거는 미국 다이너 특유의 풍성함을 보여준다. 일부 식재료는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현지 맛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안정리 로데오거리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내국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독특한 국제 문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단순히 햄버거를 먹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생활문화와 지역 특유의 국제적 분위기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이어 안산 다문화음식거리는 경기도 글로벌 음식 문화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 가운데 ‘후르셰다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의 맛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하는 음식점으로 꼽힌다.
대표 메뉴는 우즈베키스탄식 볶음밥인 ‘오쉬’다. 사마르칸트 지역 방식에 따라 밥과 고기를 층층이 쌓아 담아내며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숯불 향이 살아 있는 샤슬릭과 육즙이 가득한 삼사 역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메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식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주문 과정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직접 보여주며 선택하게 하는 방식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또한 고려인 사회를 통해 전해진 당근김치 ‘마르코프차’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문화가 만나 탄생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평가받는다.
식당 옆 식료품점에서는 향신료와 현지 식재료도 판매해 작은 해외 시장을 방문한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어 용인 단국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퍼스트네팔히말라야’는 네팔과 인도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포카라 출신 셰프가 16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현지 식재료를 직접 수입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버터 치킨 마크니 커리다. 9가지 이상의 향신료를 활용해 5시간 이상 끓여낸 커리는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주문 즉시 화덕에서 구워내는 난과 함께 먹으면 현지 레스토랑 못지않은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대학가에 위치한 특성을 반영해 밥 무제한 제공과 라씨 서비스 등을 유지하며 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만들어낸 대표 사례로 꼽힌다.
과거 관광의 중심은 명소와 자연경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음식이 여행의 핵심 동기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관광기구(UN Tourism) 역시 미식 관광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관광 분야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경기도의 사례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안산의 중앙아시아, 평택의 미국, 수원의 튀니지, 과천의 스페인, 용인의 네팔과 인도, 안양의 프랑스까지. 서로 다른 문화가 한 지역 안에서 공존하며 새로운 관광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식 산업의 성장을 넘어 다문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역 주민은 세계 문화를 경험하고, 외국인 주민은 자신의 문화를 공유하며, 관광객은 색다른 여행을 즐긴다.
여권도 비행기 표도 필요 없다. 경기도의 세계 미식 지도는 오늘도 새로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 접시 음식이 건네는 세계 여행의 초대장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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