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교육과 행정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려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계의 협력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면 주택과 도로, 교통시설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학교와 돌봄·문화·체육시설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특히 학생이 많은 도시에서는 교육 문제가 더 이상 교육청만의 영역에 머물기 어렵다. 학교 신설과 통학 여건, 과밀학급, 방과 후 돌봄, 문화·체육공간 등 시민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가 도시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많은 학생이 생활하고 있는 화성특례시가 교육과 행정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명근 화성특례시장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과 행정은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목표가 같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정 시장은 이날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을 비롯해 경기남부 8개 시 시장, 교육장들과 함께 ‘벽깨기 협약식’ 추진을 위한 사전 조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이 각자의 영역에 머무르기보다 지역 교육 현안을 공동으로 풀어가기 위한 협력의 틀을 모색하는 자리다.
교육행정과 지방행정은 제도적으로 역할과 권한이 구분돼 있다. 하지만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를 둘러싼 문제를 교육과 행정으로 명확하게 나누기는 쉽지 않다.
학생의 통학로를 예로 들면 학교 안의 문제와 학교 밖의 문제가 연결된다. 학교 주변 도로와 교통, 안전시설, 도시개발 등이 맞물리고,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교육환경 변화 역시 도시의 인구·주택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 때문에 급격한 도시 성장 과정에서는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긴밀한 협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벽깨기’라는 표현 역시 이런 행정 현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관별 업무의 경계를 없앤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각 기관이 가진 권한과 역할을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협력 구조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정 시장이 “교육과 행정은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의 업무인가’를 따지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을 얼마나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화성특례시의 경우 교육과 행정의 협력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정 시장은 화성을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생활하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학생이 많다는 것은 도시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지방정부에는 적지 않은 과제를 던진다. 학생 증가에 맞춰 학교와 교육시설이 적기에 확보되지 못하면 과밀학급과 통학 불편 등 교육환경 문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개발과 주택 공급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주거 입주 시기와 학교·교통 등 기반시설 구축 시기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맞추느냐가 주민 삶의 질을 좌우한다.
교육 문제가 도시계획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화성특례시가 교육기관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교육을 단순한 학교 내부의 문제가 아닌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문제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육환경이 좋은 도시는 아이들에게만 좋은 도시가 아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정주 만족도와도 직결된다. 학교와 통학환경, 돌봄과 문화·체육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갖춰질수록 가족 단위 주민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좋아진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도시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화성특례시가 교육과 지역사회를 연결하기 위해 추진해 온 대표적인 협력모델로는 ‘학교복합시설 이음터’가 있다.
정 시장은 화성시가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협력모델인 학교복합시설 이음터를 운영하며 “교육과 지역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음터’라는 이름에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학교라는 공간을 학생들만 사용하는 시설로 바라보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교육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생활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공간과 프로그램을 공유할 수 있다면 교육시설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결은 지역공동체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지지만 공동체 관계는 오히려 느슨해질 수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과 학부모, 주민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교육시설은 지역공동체를 연결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화성의 이음터가 단순한 시설 건립을 넘어 교육과 도시정책의 협력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정 시장이 직접 언급한 핵심 현안은 과밀학급과 원거리 통학 문제다. 그는 앞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아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배우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과밀학급과 원거리 통학은 단순히 학교 하나의 문제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도시개발에 따라 특정 지역에 학생이 집중될 경우 기존 학교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학교와 주거지의 배치가 맞지 않으면 학생들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 신설이나 증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도시개발 계획과 인구 변화, 교통망, 학교 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벽깨기 협약’ 추진은 단순한 기관 간 업무협약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협약의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언적인 협력을 넘어 개별 지역의 교육 현안을 공동으로 발굴하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교육과 행정의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결국 학생과 시민이다.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은 조직과 예산, 법률상 권한이 각각 다르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업무 영역을 구분해야 하지만 시민이 겪는 문제는 행정기관의 업무분장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한 학생의 하루만 보더라도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교통과 보행안전, 학교교육, 돌봄, 문화·체육 활동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의 정책 역시 서로 연결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협력은 단순한 행정 효율성 차원을 넘어 학생 중심의 공공서비스를 만드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 시장이 교육과 행정의 서로 다른 체계를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교육환경’이라는 공통점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화성과 같이 학생이 많은 도시에서는 학교 문제가 곧 도시 문제이고, 교육환경의 질이 도시 경쟁력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논의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대목은 특정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사이의 개별 협력을 넘어 경기남부 8개 시 시장과 교육장 등이 함께했다는 점이다.
도시마다 인구 규모와 개발 상황, 학생 수, 학교 배치 등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 현안 역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밀학급이나 통학환경 개선처럼 여러 도시가 공통으로 고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 간 경험과 정책을 공유하는 것이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도시에서 효과를 거둔 교육협력 모델이 다른 지역의 여건에 맞게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화성특례시의 학교복합시설 이음터 역시 이런 관점에서 주목할 수 있는 사례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화성의 경험이 향후 경기남부 지방정부와 교육기관 사이의 협력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다만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협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보다 협약 이후 각 도시의 교육 현안을 어떻게 발굴하고,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며, 실제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단지와 기업 유치, 도로와 철도 등 경제·교통 인프라가 도시 성장의 핵심 지표로 꼽혔다면 이제는 교육과 돌봄, 문화, 안전 등 시민의 삶과 직접 연결된 생활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교육환경은 거주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다. 화성특례시가 교육 문제를 도시정책의 주요 영역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복합시설 이음터를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의 접점을 넓혀온 화성은 이제 과밀학급과 원거리 통학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과제로 안고 있다.
결국 관건은 ‘벽깨기’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연결하는 것이다.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이 서로 다른 제도와 권한을 이유로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연결하는 것이 협력행정의 핵심이다.
화성특례시가 구축해 온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결모델에 지방정부와 교육기관 사이의 협력체계가 더해진다면 교육정책의 범위 역시 학교 담장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정 시장은 “앞으로도 과밀학급과 원거리 통학 문제 등을 해결해 우리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껏 배우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과 행정의 벽을 얼마나 낮추느냐, 그리고 그 협력이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변화로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앞으로 화성특례시 교육정책의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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