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지방의회 본회의장은 지역의 예산과 조례,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지방자치의 핵심 공간이다. 평소 시의원들이 마주 앉아 지역 현안을 토론하던 이곳에 지난 5일 특별한 ‘청소년 의원’들이 등장했다.
구리시의회는 이날 본회의장에서 구리남양주청소년교육의회 소속 학생 20여 명과 함께 ‘청소년 의회교실’을 운영했다. 청소년들은 의원석에 앉아 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배우고, 직접 회의를 진행하며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했다.
이번 의회교실은 제10대 구리시의회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청소년 대상 의정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히 의회 건물을 둘러보거나 설명을 듣는 견학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의원 역할을 맡아 토론과 의견 조정 과정을 체험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청소년들에게 지방의회는 다소 낯선 공간이다. 국회나 대통령 선거는 학교 수업과 언론 보도를 통해 비교적 자주 접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지방의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용하는 도서관과 체육시설, 통학로와 대중교통, 학교 주변 안전시설, 청소년 문화공간 등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및 지방의회의 예산·조례 심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지방의회를 이해하는 일은 곧 자신이 사는 도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운영되는지를 배우는 일인 셈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시의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의장 및 의원 환영사, 학생 주도형 모의의회 체험, 기념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핵심은 학생들이 직접 의원이 돼 본회의를 진행하는 모의의회였다. 학생들은 의회에서 안건을 논의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한 뒤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말로만 배우던 민주주의의 원리가 실제 회의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로 결론을 내리는 제도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대화와 조정을 거쳐 공동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모의의회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경험하게 한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근거를 제시하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특히 청소년들이 회의 진행의 주체가 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는 수동적인 방문객이 아니라 안건을 논의하고 판단하는 의사결정자의 입장에서 의회를 바라봤다. 의원석에 앉아 발언하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 자체가 살아 있는 민주시민 교육이 된 것이다.
교실에서 배우는 민주주의가 제도의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의회교실은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는 체험 교육에 가깝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표현하고,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과정은 학교 수업만으로 익히기 어려운 시민 역량이다.
양경애 구리시의회 의장은 환영사를 통해 의회의 본질을 ‘토론과 조정의 공간’으로 설명했다.
양 의장은 “의회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일을 토론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약속을 만드는 민주주의의 현장”이라며 “오늘 모의의회 체험을 통해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 의장의 발언은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이 단순한 의회 홍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회교실의 핵심은 청소년들에게 의회 제도를 소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의 태도를 길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지역사회에서 다뤄야 할 의제도 다양해진다. 세대와 계층, 지역에 따라 요구가 달라지고 하나의 정책을 놓고도 찬성과 반대가 엇갈린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공통의 해법을 찾는 숙의와 토론의 문화다.
청소년기에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방자치의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방자치는 주민이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제시하며, 정책 결정 과정을 지켜보는 주민의 지속적인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청소년 역시 현재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주민이자 시민이다. 비록 선거권이 없는 학생이 있더라도 교통과 교육, 안전, 문화, 환경 등 지역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이들이 지역 문제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돕는 것은 미래 유권자를 교육하는 차원을 넘어 현재의 정책 당사자에게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일이다.
지방의회의 역할은 주민 생활과 밀접하다. 지방의회는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결산을 심의한다. 행정사무감사와 시정질문 등을 통해 집행부의 정책과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는지도 살핀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청소년에게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조례와 예산, 행정사무감사 같은 용어가 자신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체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회교실은 이 같은 거리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통학 안전, 학교 주변 교통, 청소년 문화시설, 공공 체육공간, 환경 문제 등을 의제로 삼는다면 지방의회의 기능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상의 불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안한 뒤 토론을 통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이 곧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 주도형 모의의회는 주입식 교육과 차별화된다. 학생들이 직접 안건을 검토하고 발언하며 결론을 도출하면 지방의회가 멀리 떨어진 행정기관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 문제를 다루는 공간이라는 점을 체감할 수 있다.
의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청소년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기존 정책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요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도시의 문제는 성인 중심의 정책 논의와 다를 수 있다. 의회교실이 꾸준히 운영된다면 청소년 정책 수요를 발굴하는 현장 창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의회교실은 제10대 구리시의회 출범 이후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출발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프로그램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한 차례 체험을 넘어서는 후속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참여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회교실은 구리지역 초·중·고등학교와 청소년단체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학교별 참여 기회를 넓히고 연령에 따라 프로그램의 난이도와 의제를 세분화한다면 더 많은 학생이 지방자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는 의회의 기본 역할과 회의 절차를 쉽게 설명하고, 중·고등학생에게는 조례 제정과 예산 심의, 정책 제안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의 관심 분야에 따라 교통·환경·복지·문화 등 주제를 나누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학생들이 모의의회에서 제안한 의견을 정리해 시의회와 관련 부서가 검토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채택 여부를 떠나 제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검토됐는지 알려준다면 학생들은 참여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낸 의견이 행정과 의회에서 실제로 다뤄지는 경험은 민주시민 교육의 효과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의원과 학생 사이의 질의응답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원이 되는 과정, 조례가 만들어지는 절차, 지역 민원이 정책으로 바뀌는 과정 등을 현직 의원에게 직접 듣는다면 의정 활동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수 있다.
학교의 민주시민 교육, 청소년교육의회, 시의회 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전 교육에서 지역 현안을 조사하고 의회교실에서 토론한 뒤, 학교로 돌아가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일회성 행사라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의회가 먼저 문턱을 낮춰야 한다. 본회의장과 의정 활동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 의회교실은 열린 의회를 만드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학생들에게 지방의회의 역할을 알리는 동시에 의회가 다음 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의 성숙은 제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민이 지역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며, 결과에 공동의 책임을 지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토론하고 참여하는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이번 의회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본회의장은 더 이상 뉴스 화면이나 교과서에서만 접하는 낯선 공간이 아니다. 직접 의원석에 앉아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발언을 들었던 ‘민주주의의 교실’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구리시의회 청소년 의회교실은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와 청소년단체를 대상으로 임시회와 정례회 기간을 제외하고 연중 운영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책임 있게 표현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난 5일 구리시의회 본회의장에 앉은 청소년들이 배운 것도 바로 그 기본 원칙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들의 체험을 지속적인 참여로 연결하고, 청소년의 목소리가 지역사회의 정책 논의 속에서 실제로 울려 퍼지게 하는 일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은주 기자 sweetmom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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