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경기 파주 교하 지역은 1919년 3월 27일, 파주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상징적인 곳이다. 당시 교하초등학교(옛 교하보통학교) 학생들과 지역 청년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독립을 외쳤고, 일본 헌병들이 이를 진압하면서 수많은 주민이 체포·투옥되거나 희생됐다.
이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당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교하헌병주재소 터가 있었다. 그러나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역사의 현장은 사라지고 보호수 한 그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주시의회 최창호 의원은 10월 16일 제259회 임시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이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광복 80주년과 3·1운동 106주년을 앞두고, 파주의 독립운동사 복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교하헌병주재소 터는 단순한 사적지가 아니라 파주 정신의 상징이자 역사교육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 의원은 “지역 주민들 역시 유적지를 보존하고 교육공간으로 활용해 달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제시했다”며 “파주시가 시민의 뜻에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교하읍의 한 주민은 “아이들이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도시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는데, 역사는 점점 뒤로 밀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교하초등학교와 옛 와석면사무소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지만, 정작 만세운동의 중심이자 희생의 현장이었던 헌병주재소 터는 개인 소유로 방치돼 있다.
교하헌병주재소 터는 과거 일제의 탄압 중심지로, 수많은 파주시민이 수감되고 고초를 겪은 장소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 과정에서 사유지로 매각되어 울타리조차 없이 방치돼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을 공공의 공간으로 재조성해야 한다”며 “특히 3·1운동 유적지는 지역 정체성과 시민 교육의 자산이 된다”고 지적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방 도시의 정체성은 ‘근대 이후의 기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교하헌병주재소는 근대사의 어두운 흔적이지만, 이를 보존하고 교육 콘텐츠로 활용하면 도시 브랜드 가치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3·1운동 106주년이 되는 해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 기념공간 조성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파주 역시 교하 지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파주는 ‘평화도시’, ‘역사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만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유적을 시민이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이 정책적 과제로 떠오른다.
지금 교하헌병주재소 터에는 아무런 안내판도, 표석도 없다. 그저 오래된 보호수 한 그루가 묵묵히 그날의 외침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최창호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로 발언을 맺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개발 중심의 도시가 놓치고 있는 ‘기억의 공백’을 메우자는 호소다.
역사교육은 교과서 속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살아 있는 공간에서 체험하고, 기억을 나누며, 정체성을 세울 때 진정한 의미가 생긴다.
한편 교하헌병주재소 터의 복원 논의는 단지 과거를 추모하는 일이 아니라, 파주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도시의 기억’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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