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송전망·팔당댐 용수 공급 문제 해결 촉구
“소부장·설계기업 함께 키워야 반도체 초격차 유지”
[이코노미세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가 들어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가 속도를 내면서 이제 관심은 ‘계획’에서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산업단지 부지를 얼마나 빨리 조성하고 공장을 제때 착공하느냐, 여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차질 없이 공급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국가 간 경쟁을 넘어 ‘시간과의 전쟁’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속도는 단순히 한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사업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 설계기업이 집적된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고 촘촘하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향후 수십 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2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제9회 굿시티포럼 2026’에서 ‘용인르네상스 2.0이 그리는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또 처인구 이동·남사읍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과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가동하려면 중앙정부가 전력·용수 공급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조성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문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산업단지와 생산시설 구축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국가산단 부지 조성이 6개월 이상 지연됐다고 지적하면서 삼성전자가 1기 팹 일부의 가동 시기를 당초 2030년 하반기에서 2029년 하반기로 앞당긴 만큼 부지 조성을 서둘러 내년 하반기에는 팹 건설에 착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생산시설 가동 일정을 앞당기려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인 동시에 기술 변화와 시장 선점 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계획된 공장을 제때 가동하지 못하면 단순한 일정 지연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쟁에서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가산단 부지 조성과 기반시설 구축, 팹 착공이 사실상 하나의 시간표 안에서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는 게 용인시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전력과 용수가 관건이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과 초순수 제조 등에 필요한 대규모 용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공장 건물을 완성하더라도 전력과 용수 공급망이 준비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산시설 가동이 어렵다.
삼성전자 팹 1·2기의 경우 국가산단 내부에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해 전력을 공급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이 시장은 이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팔당댐에서 공급될 용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부 인근 도시에서 관로 매설에 반대하고 있다며 중앙정부와 경기도가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삼성전자 초기 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향후 삼성전자 팹 3·4·5·6기와 SK하이닉스 3·4기 팹까지 건설되면 용인 지역의 전력과 용수 수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대규모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망 확보와 추가 용수 공급체계 구축이 반도체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용인으로의 송전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설득하는 등 송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들 팹 가동에 필요한 팔당댐 2단계 용수 공급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갖는 규모를 고려하면 전력·용수 문제는 지방정부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국가적 인프라 과제라는 것이 용인시의 입장이다.
용인시는 그동안 국가산단 조성과 관련한 각종 제도 개선을 중앙정부에 요구해 왔다. 이 시장은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의 성공적인 조성을 위해 전 정부 시절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이주민 양도소득세 감면 폭 확대, 대토보상 확대, 이주자 택지 및 이주기업 전용 산업단지 마련 등을 건의해 관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현 정부가 전력과 용수 공급 등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는 행정절차의 단축을 넘어 실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산업 기반시설을 얼마나 적기에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의 진행 상황은 정부가 추진해 온 국가 첨단산업 육성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2023년 3월 15일 정부는 용인을 비롯한 전국 15개 지역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현재까지 산단계획 승인이 이뤄진 곳은 용인이 유일하다.
이 시장은 다른 14개 국가산단 후보지 역시 국가와 해당 지역 경제를 위해 중요하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가산단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점검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시장에 따르면 2023년 3월 국가산단 조성계획이 발표된 이후 2024년 12월까지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국가산단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범정부 추진단 회의가 7차례 열렸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3개월이 넘도록 점검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게 이 시장의 주장이다.
그리고 정부가 용인은 물론 다른 14개 지역의 국가산단 추진 상황도 점검하고 지역 의견을 청취해 필요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산단 조성은 토지 보상부터 산업단지 승인, 기반시설 설치, 기업 투자, 교통망 구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관과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중앙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조정 기능을 가동해야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을 신속하게 풀 수 있다는 의미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경쟁력을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용인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에 이미 형성돼 있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또 하나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경기 남부는 1983년 삼성전자가 기흥캠퍼스에서 대한민국 반도체를 처음 생산한 이후 40년 넘게 반도체 관련 산업 기반을 축적해 왔다. 용인시는 이런 산업적 기반이 향후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장 역시 이날 발표에서 반도체 생태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생태계의 외형적 확장뿐 아니라 소부장 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아무리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반도체 생산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기업이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산업 전체의 경쟁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는 수많은 공정이 정교하게 연결된 산업이다.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장비·부품업체가 신속하게 현장에 접근해 대응할 수 있는지가 생산성과 직결될 수 있다.
이 시장이 강조한 것도 바로 ‘거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의 경쟁력을 갖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앵커기업 주변에 소부장 기업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팹에서 차로 1시간 안팎 거리에 소부장 기업이 위치하면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장 건설’ 사업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수많은 협력기업과 연구개발 시설, 인재, 대학 등이 연결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용인 반도체 생태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소부장과 설계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장비와 소재, 부품, 시스템반도체 설계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이 시장의 진단이다.
또 한국 소부장·설계기업의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중앙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앵커기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소부장·설계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많은 팹을 짓느냐’에서 ‘어떤 산업 생태계를 만드느냐’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생산시설이 지역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는 산업 클러스터가 완성되지 않는다. 앵커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기업이 집적되고 기술과 인재, 연구개발 역량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향후 정책의 초점 역시 산업단지 조성에서 기업 유치와 소부장·설계기업 육성, 인재 확보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핵심은 ‘속도’와 ‘생태계’ 두 가지로 압축된다. 단기적으로는 국가산단 부지 조성과 팹 착공을 서두르는 동시에 전력·용수·송전망 등 기반시설을 적기에 확보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국내 소부장·설계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용인시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력망과 용수 공급망, 국가산단 행정절차, 대규모 기반시설은 중앙정부와 경기도, 관계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격화할수록 투자 결정에서 실제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용인에서 계획된 대규모 투자가 제때 현실화되도록 하는 행정적 지원과 국가 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이 시장도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지역개발 차원이 아닌 국가적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용인의 반도체 프로젝트는 용인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지만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며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시 역시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충분히 하고 중앙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인에서 진행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는 앞으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산업지형을 바꿀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투자계획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단지를 제때 조성하고 팹을 계획대로 가동할 전력과 용수를 확보하는 일, 송전망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일, 소부장과 설계기업을 함께 키우는 일이 맞물려야 비로소 거대한 투자계획이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시간은 또 하나의 기술 경쟁력이다. 40년 넘게 축적된 경기 남부 반도체 생태계를 기반으로 추진되는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대한민국의 ‘반도체 초격차’를 이어갈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승부처는 계획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속도에 달려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장수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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