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칼날이 허공을 가르자 무대 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힘찬 기합 소리가 객석까지 울려 퍼지고, 절도 있는 몸짓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음악과 맞물린다. 조선시대 무예가 단순히 옛 기록 속 장면으로 머물지 않고 현대의 공연예술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수원에서 정조대왕과 조선 최고의 무예서로 평가받는 '무예도보통지'를 소재로 한 역사 판타지 액션 뮤지컬 ‘1790’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공연의 제목인 ‘1790’은 정조의 명으로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된 해에서 따왔다. 230여 년 전의 역사적 시간을 하나의 숫자로 압축하고, 그 숫자를 다시 현대 공연의 이름으로 불러낸 것이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도 최근 공연을 관람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감을 전했다. 이 시장은 칼날이 바람을 가르고 힘찬 기합 소리가 무대를 채우는 모습을 소개하며, 정조대왕과 '무예도보통지'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1790’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역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고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예와 태권도, 음악, 이야기를 결합했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 위에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의 절도 있는 무예 시연과 역동적인 태권도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동안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은 유적지를 보존하거나 축제와 행사를 통해 알리는 데 무게가 실리는 경우가 많았다. ‘1790’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역사적 인물과 기록, 전통 무예를 오늘날 관객이 직접 보고 즐기는 무대 콘텐츠로 바꿔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조는 수원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역사적 인물이다. ‘1790’은 이러한 정조의 시대를 공연예술의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작품 제목을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된 연도인 ‘1790’으로 정한 것은 공연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의 특정 연도를 공연의 제목으로 가져오면서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1790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연을 보기 전에는 단순한 숫자였던 연도가 공연을 접한 뒤에는 정조와 무예, 수원의 역사를 연결하는 하나의 기억 장치가 되는 셈이다.
역사문화 콘텐츠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역사적 가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어렵고 딱딱한 방식으로 전달하면 시민, 특히 젊은 세대와의 거리는 멀어질 수 있다.
‘1790’이 선택한 방법은 ‘액션’이다. 무예24기 시범단의 무예와 태권도 퍼포먼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여기에 음악과 이야기를 결합했다. 눈으로 역사를 읽는 대신 몸의 움직임과 소리, 무대의 긴장감을 통해 역사를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이 시장 역시 공연을 관람한 뒤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함께 무예24기 시범단의 절도 있는 무예 시연, 역동적인 태권도 퍼포먼스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수원이 가진 역사적 자산이 박물관과 문화재 현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연예술의 소재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화유산을 시민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적을 찾아 설명을 듣거나 관련 자료를 읽는 것이 역사문화 체험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공연과 미디어, 야간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1790’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공연에서는 전통 무예를 단순히 시범 형태로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야기 속에 배치한다. 여기에 현대적인 태권도 퍼포먼스와 음악이 더해지면서 전통과 현대가 한 무대에서 만난다.
무예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도 액션과 음악을 통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공연을 본 뒤에는 자연스럽게 정조와 『무예도보통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역사문화 도시를 표방하는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이러한 콘텐츠가 갖는 의미가 작지 않다. 문화유산은 보존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시민이 지속적으로 접하고 경험해야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과 그 가치를 현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과제다.
수원에는 정조와 수원화성,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역사적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자산을 공연과 축제, 야간 관광 등 다양한 콘텐츠로 연결한다면 시민에게는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방문객에게는 수원을 기억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790’은 그 가능성을 공연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 다른 시대의 ‘몸의 언어’를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예24기 시범단의 절도 있는 무예와 현대적인 태권도 퍼포먼스가 함께 등장한다.
전통 무예와 현대 태권도는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힘과 절제, 긴장감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음악과 극적 이야기가 결합하면서 공연은 단순한 무예 시범을 넘어 종합적인 무대 콘텐츠로 확장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긴 역사적 설명을 먼저 이해해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빠른 움직임과 기합, 음악을 통해 먼저 공연에 몰입한 뒤 작품 속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도 역사문화 콘텐츠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편의 공연을 본 관객이 ‘왜 제목이 1790일까’, ‘'무예도보통지'는 어떤 책일까’, ‘정조는 왜 무예에 관심을 가졌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면 공연은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질문이 다시 수원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도 주목된다. ‘1790’은 화성행궁광장에 자리한 정조테마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정조를 소재로 한 공연을 정조와 수원의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에서 관람한다는 점에서 공연장 밖의 공간까지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실내 공연장에서 역사극을 보는 것과 역사적 장소를 가까이 두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관객에게 다른 느낌을 준다.
공연이 끝난 뒤 주변의 역사문화 공간을 둘러볼 수도 있고, 반대로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찾은 방문객이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즉 공연과 공간이 서로의 의미를 강화하는 구조다.
첨부 자료에 따르면 ‘1790’은 오는 29일 토요일 오후 3시와 오후 6시 두 차례 추가 공연될 예정이다. 장소는 화성행궁광장에 자리한 정조테마공연장이다.
이 시장은 공연 관람과 함께 연장 운영 중인 ‘수원 국가유산 야행’도 즐겨볼 것을 시민들에게 권했다. 공연에서 정조 시대의 역사와 무예를 만나고, 공연장을 나선 뒤 수원화성의 밤을 경험하는 동선이다. 이는 하나의 공연을 도시 전체의 문화관광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1790’과 ‘수원 국가유산 야행’의 연계는 지역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한 지역에 오래 머물도록 하려면 단일 행사나 명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 체험 요소가 시간대별·공간별로 연결될 때 도시 체류 경험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오후에는 정조를 소재로 한 공연을 보고 저녁에는 수원화성의 야경과 국가유산 프로그램을 즐기는 방식은 역사문화 자원을 ‘하루 일정’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야간 문화 콘텐츠는 낮 시간 중심의 문화재 관람과는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명 아래 드러나는 성곽과 역사 공간은 낮과 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공연에서 느낀 역사적 감흥을 실제 공간에서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이 때문에 ‘1790’을 단순히 한 편의 뮤지컬로만 볼 필요는 없다. 공연 자체의 완성도와 함께 수원화성·화성행궁 등 주변 역사문화 자원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인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은 어느 도시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시민과 방문객이 즐기는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수원의 강점은 정조와 수원화성이라는 분명한 역사적 상징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연예술을 결합하면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시민과 만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1790’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역사적 소재를 무대 위로 가져오고, 무예24기와 태권도, 음악과 이야기를 결합했다. 또 공연장을 화성행궁광장에 두고 주변의 국가유산 야행과 연결함으로써 공연 관람 이후에도 역사문화 체험이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문화 콘텐츠는 반드시 거대한 시설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도시만이 가진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를 시민과 관광객이 이해하기 쉬운 현대적 언어로 바꾸는 작업에서 출발할 수 있다.
수원에는 정조와 수원화성이라는 다른 도시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역사적 자산을 현재의 문화와 어떻게 연결하고 다음 세대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다.
공연 ‘1790’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시도다. 230여 년 전 완성된 무예서의 시간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나고, 전통 무예의 몸짓이 현대 태권도와 음악을 만나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공연장을 나온 관객은 다시 화성행궁과 수원화성의 밤을 만난다.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오늘의 문화로 다시 불러내는 것. 수원이 ‘정조의 도시’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넘어 ‘역사를 즐기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주목해야 할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1790’은 오는 29일 오후 3시와 오후 6시 두 차례 더 공연되며, 화성행궁광장 정조테마공연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공연 후에는 연장 운영 중인 ‘수원 국가유산 야행’을 통해 수원화성의 야경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이주은 기자 pin8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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