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토요일 저녁, 의왕 내손동의 한 공원.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자, 커다란 스크린에 영화가 시작됐다. 팝콘 냄새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원은 순식간에 야외극장으로 변했다.
'멀리 극장 갈 필요가 없어요. 집 근처에서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니 참 좋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나온 주민 김지현(38)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영화 속 장면에 맞춰 깔깔대며 옆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의왕시가 마련한 ‘우리동네 돗자리 영화관’은 올해로 두 번째다. 지난해 첫 선을 보였을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민이 찾아 인근 도로가 북적일 정도였다. 올해는 그 호응을 반영해 상영 횟수를 늘리고 편의 시설도 보강했다.
이날 공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부터 청년층을 겨냥한 최신 영화까지 다양하게 준비됐다. 상영 전에는 마술쇼와 버블 공연이 펼쳐져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푸드트럭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부모들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여유를 만끽했다.
돗자리 영화관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데 있지 않다. 옆자리에 앉은 이웃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이 서로 뛰놀며 친구가 되는 장면은 흔한 multiplex 극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주민 박성호(46) 씨는 “아이 친구 부모님과 함께 보러 나왔는데, 평소에 몰랐던 이웃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며 “공동체라는 게 멀리 있지 않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행사가 열리는 날, 인근 카페와 음식점 매출도 크게 늘었다. 공원 앞 분식집 주인 이모(55) 씨는 “영화관람 나온 가족들이 삼삼오오 들르면서 주말 매출이 평소보다 30% 이상 늘었다”며 “우리 같은 자영업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행사”라고 말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문화와 경제가 동시에 숨을 불어넣는 셈이다.
김성제 의왕시장은 “돗자리 영화관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만드는 생활 속 문화 공간”이라며 “앞으로 음악 공연과 독서회 등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소도시가 시민의 일상적 공간을 활용해 문화적 만족도를 높인 대표 사례”라며 “공동체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끄는 ‘착한 문화정책’”이라고 말했다.
공원에 모인 시민들이 영화가 끝난 뒤 흩어지는 모습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누리고, 이웃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은 의왕이라는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다음 주 영화도 기대돼요.'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부모의 표정에는 여느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만족이 담겨 있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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