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10월 15일 시흥시청 브리핑룸에서 임병택 시흥시장이 굳은 표정으로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2015년도 하수관로 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을 둘러싼 부적정 시공 논란이 결국 106건의 하자 사실로 드러났다.
8년 넘게 이어진 하수관로 정비 사업이 시민의 생활 편의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지속적인 악취·누수·도로 침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시 행정에 대한 신뢰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민관공동조사단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총 106건의 부적정 시공 중 72건은 조치가 완료됐으나, 나머지 34건은 여전히 보완 시공이 진행 중이다. 시흥시는 “올해 안에 모든 조치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제의 뿌리는 단순한 시공 하자가 아니라 감독과 점검 과정의 구조적 부실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공 인프라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한 관리 체계인데, 이번 사안은 감리와 점검이 모두 형식적이었다”며 “결국 시민 피해가 누적된 뒤에야 행정이 움직였다”고 비판했다.
실제 조사단은 “시흥시가 관리·감독과 점검에서 미흡했다”고 명시하며, 시공사뿐 아니라 감리사·행정기관 모두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시흥시는 이번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책임 있는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임 시장은 “부적정 시공에 따른 시민 불편과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며 “시행사에는 부당이득금 손해배상 청구, 감리사에는 행정처분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관련 자료를 백서로 남겨 시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소홀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BTL(Build-Transfer-Lease, 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은 민간이 먼저 시설을 건설하고, 지자체가 장기간 임대료 형태로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다. 문제는 공공 감시가 느슨해질 경우, “이익은 민간이, 책임은 시민이” 되는 역전 현상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한 도시정책 연구자는 “민자사업은 예산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 설계·감리 단계에서의 공공 감시가 미흡하면 결국 예산 누수가 발생한다”며 “시흥 사례는 전국 지자체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에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건을 “행정의 책임성 회복 시험대”로 보고 있다.
SNS와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수년간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시는 ‘공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는 비판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단순한 시공 문제를 넘어 지방행정의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시흥시에 던지고 있다.
이와 관련 임병택 시장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하수관 정비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흥 하수관로 정비 BTL사업 사태는 ‘시설’보다 ‘행정’의 문제였다. 하수관의 균열보다 더 깊은 것은 행정의 신뢰 균열이었다. 시흥시가 내세운 “백서와 시민 공동 브리핑”이 단순한 수습책이 아니라,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진정성 있는 기록과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코노미세계 / 이해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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