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센터가 들어서면 손님이 늘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기다리는 게 지쳐요.' 경기도청 인근에서 20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8) 씨는 한숨을 쉬었다. 도민의 삶과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거라던 경기도 통합데이터센터 개소가 내년이 아닌, 2026년 2월로 다시 미뤄졌다는 소식 때문이다.
당초 올해 운영비 12억 원이 편성됐지만, 일정 지연으로 전액 감액됐다.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따라붙은 수백억 원 규모의 연쇄 불용이다. 기록원 공사비 99억 원, 구관 리모델링과 석면 해체 공사비 143억 원이 고스란히 멈춰 섰다. 교통국의 버스운행정보시스템 예산도 손을 대지 못한 채 미뤄졌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안계일 도의원은 “이번 추경의 감액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라, 도민 삶의 공백을 방치한 행정 실패의 단면”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치로 드러나는 예산 낭비는 곧, 도민의 시간과 생활의 낭비로 이어진다. 예산이 멈춘 동안 도민들의 일상은 느려지고, 기대했던 서비스는 그림의 떡이 된다.
안 의원은 이번 추경 심사에서 “AI국, 자산관리과, 총무과 등 부서 간 협의 부족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매년 같은 이유로 수백억 원이 이월되고 있지만, 명확한 일정 관리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다.
경기대 행정학과 박모 교수는 “대형 공공 프로젝트가 지연될 때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주민”이라며 “행정 신뢰가 깨지면 다음 사업에 대한 공감과 지지도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구 도청사 주변 상권은 통합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숨통’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연기된 일정은 상인들에게 ‘좌절의 낙인’으로 남았다.
“센터가 들어서면 학생도, 연구원도, 공무원도 많이 올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매번 늦춰지니 이제는 기대 자체를 접는 분위기예요.” 수원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42) 씨의 말에는 체념이 묻어났다.
지역 주민에게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전산 시설’이 아니다. 구 도청사 부지 활용과 맞물려 지역 경제를 되살릴 희망의 거점이었다. 그 희망이 지연될 때마다 지역 공동체는 더 깊은 피로감을 겪는다.
이번 사안은 정치적 파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 집행부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갈등은 더 첨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은 도민의 목소리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한 도의원은 “여야를 넘어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피해는 결국 도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 논쟁이 아닌, 도민 삶의 질 문제라는 의미다.
안계일 의원은 “이번 추경은 수백억 원 예산 낭비와 지역 발전 차질을 불러온 행정 실패”라며, 공사 일정 전면 재점검과 종합계획 마련을 촉구했다. 도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더 이상 미뤄지지 않고, 더 이상 허공에 흩어지지 않는 ‘실행의 약속’이다.
행정은 종종 ‘예산 단위’와 ‘공사 일정’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건 시민의 시간, 상인의 하루, 학생의 등교, 직장인의 출근길이다. 통합데이터센터 지연은 곧 도민의 삶의 지연이다.
“언제쯤이면 제대로 되는 걸까요.” 시민들의 이 짧은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경기도의 행정은 또 한 번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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