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11월 6일 밤 8시 50분. 영통구 매탄동의 한 스쿨존 대각선 횡단보도. 자전거를 타고 건너던 초등학생이 우회전하던 차량의 범퍼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주변을 스치던 바람 한 줄기처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은 전혀 달랐다.
비명을 들은 인근 시민들이 뛰어왔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열 명이 모였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짧은 외침과 함께 승용차 한쪽이 번쩍 들려 올려졌다. 아이를 빼낸 시간은 10초 남짓. 주변 CCTV에는 여러 시민이 두 손으로 차량 하부를 받쳐 들며 아이를 끌어내는 긴박한 장면이 남았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11일 자신의 SNS에 이 소식을 직접 전하며 “수원이 기억해야 할 용기와 따뜻함”이라 표현했다. 아이는 다행히 찰과상 정도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큰 부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구라도 결과를 예단할 수 없었던 그 순간, 시민들의 결단이 아이의 생명을 지켜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아이를 구한 시민들의 신원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이 시장은 “현재 세 분과 연락이 닿았고, 나머지 일곱 분을 찾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시는 구조 시민에게 ‘모범시민 표창’을 수여할 계획이며, 혁신민원과 새빛민원실을 통해 제보를 받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당시 시민들은 이름도 남기지 않고 흩어졌다”며 “아이와 부모의 눈물 섞인 감사 인사를 듣고도 ‘아이가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돌아선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일상에서 발현된 공동체 안전문화의 상징적 장면”이라 평가한다. 한국안전학회 한 관계자는 “실제 차량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들어 올리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라며 “위험 속에서 즉각적 결단을 내린 시민들의 행동이 안전문화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우회전 사고’였다. 스쿨존에서 반복되는 대표적 사고 유형이다. 운전자가 교차로 진입 시 좌측 차량 신호에 주의를 집중하다 보행자를 보지 못하는 경우, 특히 야간에는 위험이 배가된다. 스쿨존이라 하더라도 밤 시간대의 보행자 혹은 자전거 이용자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
대각선 횡단보도는 보행 편의성을 높이지만, 차로를 가로지르는 각도가 불규칙해 운전자의 주의가 훨씬 더 필요하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지점도 바로 이런 구조였다. 수원시는 사고 직후 즉시 현장 점검에 나섰으며, 우회전 차량을 위한 보행자 주의 표지판을 추가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연평균 약 400건 안팎으로, ‘민식이법’ 시행 이후 감소세를 보였으나 야간 사고 비율은 큰 변화가 없다.
이 시장은 “스쿨존에서는 보행자가 없더라도 내 아이가 건넌다는 마음으로 차량을 멈춰 달라”고 당부했다. 우회전 일시정지는 법적 의무지만, 현실에서 모든 운전자가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전문가들은 “일시정지는 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약속”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를 구한 시민 10명은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의 행동은 도시 전체에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누군가의 아이” “우리 모두의 책임” “일시정지가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공동체가 어떻게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안전을 더 견고히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수원시는 여전히 일곱 명의 시민을 찾고 있다. 하지만 도시가 찾아야 하는 것은 시민의 신원뿐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지속 가능한 안전 시스템이라는 점을 사고는 말해주고 있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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