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세계] 금촌동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던 70대 주민 김모 씨는 요즘 장바구니를 채우기보다 한숨을 먼저 쉰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집까지 금세 걸어갔는데, 지금은 가림막을 돌아 몇 배로 걸어야 해요. 길도 울퉁불퉁해서 넘어질까 늘 불안하다.”
2022년 철거 후 중단된 금촌 율목지구 재개발 현장은 거대한 가림막 속에 멈춰선 채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아왔다. 멈춘 공사장은 단순한 철골 구조물이 아니라, 주민들의 주거 안정·이동권·상권 활력까지 묶어둔 시간의 감옥이 됐다.
금촌동 중심부에 위치한 율목지구는 1,213세대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위해 2021년 이주를 시작했고, 2022년 여름까지 철거를 마쳤다. 그러나 보상가 소송과 국제 정세로 인한 원자재·인건비 폭등이 겹치면서 분양가는 현실과 맞지 않았다.
“평당 885만 원에 분양하겠다”는 조건은 건설사들에게 적자를 전제로 참여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결국 사업자는 등을 돌렸고,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해당 조합을 ‘사고 조합’으로 분류했다. 그 순간부터 율목지구는 멈춘 마을이 되었다.
도시는 사람의 발길이 모여 살아 숨 쉬지만, 지금 금촌동의 길은 끊겨 있다. 가림막에 막혀 곧장 갈 수 있는 길을 두세 배로 돌아가야 한다. 겨울철 결빙된 경사지 인도는 노약자와 장애인에게 위험한 장애물이 된다. 시장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는 푸념을 넘어서 “이 동네가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절망감을 토로한다.
주거지와 시장, 보행로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주민의 삶 그 자체다. 길이 끊기면 장바구니도, 아이들의 등굣길도, 노인의 산책길도 멈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옆 금촌2동 2지구는 2009년부터 지정돼 예정대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금호건설이 시공을 맡은 이곳은 1,055세대 규모로 2025년 10월~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같은 금촌동 안에서 한쪽은 활기를 띠고, 다른 한쪽은 슬럼화로 빠져드는 현실은 주민들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율목지구 사태가 단순히 ‘분양가’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또, 도시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단순히 숫자와 수익성만으로 접근하면, 주민의 이동권·주거권·삶의 질이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개발의 공공성 회복이다.
특히, 공영주차장 설치·공원 입체 활용·도로 개선 같은 공공 인프라 투자가 주민 체감을 높이고 사업성을 되살릴 열쇠라고 강조했다.
파주시의회 이익선 의원은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공영주차장 설치로 지하 2층 구조를 3층으로 확대, 1,400여 대 규모 주차장을 마련해 주차난 해소와 상권 회복을 동시에 도모. △둘째, 공원 부지 입체 활용으로 기부채납 부지 지하에는 주차장을, 지상에는 공원을 조성해 주민 삶의 질과 상권 활력을 함께 살리는 방안. △ 셋째, 도로와 인도 개선으로 2지구와 경계 도로를 준공 시 함께 개설하고, 경사지 인도를 평지화해 노약자와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 등이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파주시의 적극적 예산 지원”이라며, “주민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행정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율목지구 재개발은 단순한 아파트 건설이 아니라, 주민의 일상과 공동체의 미래가 걸린 과제다. 길이 막히면 삶도 막히고, 발걸음이 끊기면 도시는 숨을 잃는다.
금촌동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주민이 편히 걸을 수 있는 길, 안심하고 차를 댈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원을 되찾는 것이다.
이코노미세계 / 김병민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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