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 “삶의 질·주거권 외면한 처사”

[이코노미세계] 국토교통부가 26일 발표한 ‘1기 신도시 재건축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서 성남 분당만 추가 물량이 ‘제로(0)’로 확정되자, 분당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고양·부천·안양·군포 등 다른 신도시들은 대규모 물량을 배정받았지만, 가장 큰 규모와 수요를 가진 분당만 소외됐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갑질 행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주민들의 허탈감과 박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분당 구미동의 한 주민 김모(58) 씨는 발표 직후 기자에게 울분을 토했다. “1990년대 입주할 때만 해도 분당은 꿈의 도시였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면서 건물은 낡고 생활 환경은 불편해졌다. 이젠 재건축이 답인데, 정부가 또 발을 빼다니 허탈하다.”
정자동에 사는 이모(45) 씨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버텼는데, 이렇게 또 뒤로 밀리면 아이들 세대까지 노후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가? 정부가 우리를 외면한 것 같아 서운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분당 주민만 역차별당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주 대책 마련 없이 ‘공급 불가’라는 이유를 든 국토부의 설명에 대해 “주민 책임을 시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거세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발표 당일 오후 시청 모란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분당은 재건축 규모와 주민 수요가 가장 큰데도 추가 물량이 제로로 발표됐다”며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고, 사실상 분당 재건축을 후퇴시키는 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 시장은 특히 국토부가 성남시의 이주단지 후보지 5곳을 모두 거부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분당은 신규 택지가 없는 도시다. 결국 개발제한구역을 풀어야 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 대책이 없다고 배제한 것은 시민 기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성남시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시민 권리와 주거권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분당 주민 온라인 커뮤니티와 아파트 단지 카페에는 국토부 발표 이후 수천 건의 글이 쏟아졌다. “우리를 소외시켰다”, “분당만 희생양”이라는 글부터 “집단 서명 운동을 시작하자”는 행동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한 주민은 “이제는 개별 불만을 넘어 시민 전체가 나서야 할 때”라며 “재건축은 단순히 집값 문제가 아니라 안전·주거권 문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분당 내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일부 단지는 구조적 안전성 우려도 제기된 상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적 이유로 주민 생존권을 외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주민 집단행동 가능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정책학 전문가 이 모 교수는 “분당은 노후화가 가장 심각한 1기 신도시인데도 물량을 배제한 것은 정책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부가 다른 신도시에만 물량을 확대하면서 분당만 제외하면, 결국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 분석가 박 모 연구원은 “분당 재건축이 지연되면 주민 이주 수요가 인근 용인, 광주, 수원 등으로 몰려 전세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이는 곧 사회적 갈등과 지역 간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성남 반경 10km 내 신규 주택 공급 계획이 있어 이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성남시는 “실제 신규 택지가 전무하다”며 “개발제한구역 해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정책적 현실성과 주민 체감 간의 괴리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주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논리’가 현장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물량 배제’라는 행정 조치를 넘어, 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민이 소외되면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분당 주민 김모 씨의 말처럼 “정부가 우리와 대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결국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목소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 요구로 해석될 수 있다.
분당 재건축 배제 논란은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후 도시의 재생과 주민 삶의 질, 그리고 국가 주거 정책의 신뢰성이 모두 걸려 있다.
국토부와 성남시의 갈등은 결국 시민의 주거권을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정부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은 사회적 갈등을 넘어 정치적·경제적 불신으로 확산할 수 있다.
이코노미세계 / 오정희 기자 okna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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