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뻔히 예상되는 미래격차를 학생 개개인이 감당하게 하지 않겠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10월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던진 이 한마디는 경기교육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 속에서, 학교 교육이 시대 변화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온다는 경고다.
임 교육감은 “미래사회에 요구되는 대표적 역량은 AI디지털 역량”이라며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지 못하면 일상생활과 사회참여에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기교육이 AI디지털 활용 능력과 인성 중심의 미래역량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미 AI 리터러시(AI Literacy)가 ‘읽고 쓰기’만큼 필수적인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교사는 AI 도구를 학습 파트너로 활용하고, 학생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여전히 대학입시 중심의 구조에 묶여 있어, 미래교육의 전환이 제도적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교육감은 현 교육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대학입시 중심 체제’를 꼽았다. “교육은 늘 ‘대입’이라는 큰 벽에 부딪힌다”며 “입시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교육의 정상화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 발언은 경기교육청이 추진 중인 ‘미래학교’ 프로젝트나 ‘AI디지털 학습 생태계 구축’ 등과 맞물리며, 교육 구조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선언으로 읽힌다.
실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AI디지털교실’ 도입을 확산하고, 교원 연수를 강화하는 등 학교 현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수능과 내신 위주의 평가 체제 안에서 혁신교육이 변방에 머무른다는 현장의 우려도 깊다. “미래 역량을 강조해도 대학은 여전히 점수로 학생을 평가한다”는 교사들의 반응은, 임 교육감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임 교육감은 현행 상대평가 체제가 학생 간 무한 경쟁을 유도하고, 협력의 가치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체제는 내가 잘하는 것보다 남보다 앞서는 데 집중하게 만든다”며 “상대가 못해야 내가 기회를 얻는 구조를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임 교육감이 제시한 대안은 “상대방과 상관없이 360도 어느 방향으로 가도 기회가 생기는 구조”다.
이른바 ‘360도 기회 구조’는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게 다양한 진입로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다. 이는 단일한 서열 중심의 대입 경쟁을 넘어, 다원적 성취 인정 체계와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확산하려는 구상과 맞닿아 있다.
임 교육감은 경기교육 변화의 ‘성패’를 학부모에게 돌렸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물건의 품질을 높이듯, 학부모의 눈높이가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며 “경기교육이 최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는 교육청 중심의 행정 개혁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이 반영된 메시지다. 학부모가 교육 소비자이자 감시자로서 학교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전국 최대의 학생 수를 보유한 교육 행정 단위로, 교육정책의 실험실 역할을 해왔다. 혁신학교, 무상급식, 고교학점제, AI교실 등 굵직한 제도가 경기에서 출발했다. 임 교육감의 이번 메시지는 이러한 흐름을 ‘AI디지털 전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교육청은 AI 기반 맞춤형 학습플랫폼 확대, AI튜터 실험학교 운영, 교원 AI 연수 강화 등 다층적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인프라 불균형과 교사 피로도가 주요 과제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임 교육감의 발언을 단순한 비전 제시가 아닌 생존 담론으로 본다. AI가 사회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는 가운데, 교육이 뒤처질 경우 불평등은 ‘예견된 격차’로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디지털 역량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그리고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교육복지의 새로운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임 교육감은 “경기교육은 학생 한 명도 뒤처지지 않게, 시대 변화에 맞춘 교육 기회를 보장할 것”이라며 “교사·학부모·지역이 함께 미래교육의 문을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세계 / 김나경 기자 bmk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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